학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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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역사

지금의 북경대학교 한국어학부는 1942년에 세워진 쿤밍국립동방언어전문학교(昆明東方語言專科學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1945년의 충칭(重慶)국립동방언어전문학교 한국어학과, 그리고 1946년 난징(南京)국립동방언어전문학교 한국어학과를 거쳐, 1949년 북경대학교 동방언어학과로 통합, 북경대학교 동방언어학부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 장소의 변화, 그리고 한국어학과의 성장을 고려하여 다음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제1단계(1942~1945년): 쿤밍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북경대학교 한국어학부 뿌리

1942년, 국민당 정부 산하 교육부에서는 동양의 여러 독립 국가와의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 동남아시아 지역 통번역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를 세워 초기에 캠퍼스를 쿤밍에 두었다. 초기에 쿤밍 동방어문전문학교에는 힌디어, 베트남어, 미얀마어, 태국어, 이렇게 4개 전공밖에 없었으며, 충칭, 꾸이양(貴陽), 꾸이린(桂林), 쿤밍 네 곳에서만 학생을 모집했다. 이 시기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한반도는 남과 북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통제되어, 그때까지 독립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어 또한 자연스레 동방어문전문학과의 전공 안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역사적으로 쿤밍 동방어문전문학교는 한국어학과 설치의 가능성과 이를 위한 객관적인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2단계(1945년): 충칭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 한국어학과-한국어학과의 탄생

1945년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가 쿤밍에서 충칭으로 캠퍼스를 옮기면서, 당시 총장이셨던 야오난(姚楠) 총장님의 주관 하에 한국어학과와 인도네시아-말레이어 학과가 증설되었다. 이로써 중국 최초의 한국어학과이자 북경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부의 전신인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 한국어학과가 탄생하게 되었다.학과 설립 초기에는 2년에 1번씩 학생을 모집했으며, 교육은 주로 김준엽, 이계열, 마초군 등 한반도에서 오신 3분의 교수진이 담당했었다.

제3단계(1946~1948년): 난징 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 한국어학과-북경대학교 한국어학과의 이전

1946년에 동방어문전문학교는 국민정부를 따라 난징으로 이전하여 그 해 2월에 학생을 처음으로 모집했다. 양통방(楊通方) 선생님 등 당시 동방어문전문학교 한국어학과에 입학한 이들은 중국 최초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이었다. 1948년 여름, 김준엽 교수님이 한국어학과 학생 4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서울대학교에 입학시키기도 하셨다. 나머지 선생님 두 분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에 북한으로 돌아가셨다.

제4단계(1949~1992년): 북경대학교 동방어문학부 한국어학과-최초의 형성과 발전

1949년, 정무원(政務院) 주은래 총리의 지시로 동방어문전문학교는 북경대학교 동방어문학부로 통합되었다. 기존에 동방어문학부에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아랍어, 이렇게 3개 학과밖에 없었는데, 그때의 개편으로 북경대학교 동방어문학부의 학과도 증가하고 중국에서의 한국어 교육 및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이계열 교수님과 마초군 교수님은 난징 동방어문전문학교에서 북경대학교 동방어문학부로 옮겨 와 재직을 하게 되셨으며, 난징 동방어문전문학교에서 데리고 온 학생들과 북경대학교에서 새로 모집한 신입생들로 한 학년을 편성해 교육을 했다. 당시의 교육환경은 그다지 좋지 못하였다. 교실은 낡고 기숙사는 초라했으며, 학습 자료 또한 매우 부족했다. 정기적으로 배포되는 유인물이 교재였으며, 듣기 교육 역시 육중한 녹음기 한 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토지개혁이나 한국전쟁 참전 같은 정치적인 운동 또한 비교적 많이 일어나, 수업할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도 했다. 그래도 ‘교실은 낡았을망정 나는 홀로 새로워지리라(斯是陋室, 惟吾獨新.)’는 각오로 교수진과 학생 모두 갖가지 어려움을 헤쳐 가며 한국어 공부에 매진해 왔다.

제5단계(1992~2008년): 북경대학교 동방어문학부 한국어학과-학과의 눈부신 성장

1992년 8월 24일은 중한 양국이 수교를 맺은, 한 시대의 획을 그은 날이었다. 이 날 이후 두 나라는 각 방면에서 빈번하고 깊은 교류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러한 정치정세의 변화는 북경대학교 한국어학과에도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즉 안정적이고 긴밀한 중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한국어 인재에 대한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한국학 관련 연구의 성과를 함께 나누는 교류의 장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992년 이후 한국어학과에서는 우수한 교수를 다수 초빙하여, 교수진을 9명으로 늘렸다. 이들 교수들은 중국에서의 한국어 교육 및 한국학 수준의 제고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하는 사회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어학과에서는 1993년부터 4년마다 한 번씩 학생을 모집하던 데서 매년 학생을 모집하는 학사 관리 방식으로 변모했으며, 또 2005년,그리고 2008년에 번역학 및 역사학 전공 박사과정을 설치하여 국내 각 대학 혹은 연구 기관 출신의 고급 인재들을 수혈 받고 있다. 그밖에도 교육 이론의 발전과 사회 및 학생의 요구에 발맞추어 한국어학과에서는 현실적인 의미를 지니는 많은 새로운 교과목을 증설하여 학생들에게 양호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제6단계(2009년~): 북경대학교 한국어학부-중흥의 길목에 선 한국어학부

지난 60여 년 동안 북경대학교 한국어학과는 한국학 연구 분야의 최고 엘리트를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석사, 박사 등 여러 수준의 한국학 전공 인재들을 배출해 왔고 한국어, 한국 문학, 한국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의 발전과 한, 중 관계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 북경대학교 한국어학과는 교수진의 연구 역량, 교육 수준은 물론이고 학교 차원의 비중이나 대외 교류 등 모든 면에서 학부 승격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 11월 중순 경, 저희 학과는 한국학 교육이나 연구의 더 큰 발전을 도모하고, 이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중국과 한국의 많은 분들의 숙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학교 측에 정식적으로 학부 승격 신청서를 제출했다. 몇 개월을 거친 학교 측의 심사숙고와 여러 번의 논증 및 토론 끝에 2009년 3월, 새 학기의 시작과 더불어 저희 학과는 드디어 '한국(조선)언어문화학부(韩国(朝鲜)语言文化系)'로 승격되고 말았다. 이제는 우리 학과는 북경대학교 열네 개 비통용어 학과들 중에 유일한 독립적인 학부로 부상되었다.

이번 승격을 통하여 우리는 학교 측에서 우리 학과가 교육, 연구 그리고 국제 교류 등 여러 분야에서 거두어 온 성과에 대하여 충분히 인정하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 학과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의 역량을 동원하여 한국어학과를 한층 더 발전시키려는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한국어학과는 설립된 지 60년이 넘은 오늘날에 중흥의 길목에 다시 서게 되었다. 학과의 모든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학부의 미래에 대해 더욱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학과에서 학부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승격을 계기로 한국학 연구는 물론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문학 교육에 있어서 더욱 노력을 기울여서, 북경대학교어학부를 중국 내 한국학 교육 및 연구의 명실상부한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