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드 배치 부지조사 마쳐"…韓 "요청도, 협의도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에 대한 미국 정부 관리들의 최근 발언이 오락가락해 과연 미국 정부의 생각이 무엇인지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존 커비 대변인은 지난 10일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 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가 사흘 만인 이날 "한국과 아무런 공식적 협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뒤집었다.
사드의 한국 배치와 관련해 미국 관리의 발언이 번복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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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제임스 서먼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이후 사드 배치를 협의 중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아니라고 부인한 적이 있다.
미국 관리들의 발언이 겉보기엔 이처럼 오락가락하지만 면밀히 계산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협의 요청이 없다며 요청이 있으면 그때 가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사드 배치와 관련 "미 측의 결정이나 요청도 없었으며 협의도 가진 바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으로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비공식적' 협의를 지속해 왔고 부지 조사까지 마쳤다는 미국 측 주장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 미 국방부 대변인 "한국과 협의 중" 언급 후 사흘 만에 "아니다"
커비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 모두 사드 미사일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한국 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전달할 만한 내용이 없다"면서 "그러나 사드 미사일 능력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 측과 협의 중'이라는 커비 대변인 발언에 대한 제프 폴 국방부 공보담당관의 부연 설명은 더욱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폴 담당관은 이날 연합뉴스에 "현재 양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사드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진지하고 공식적인 논의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커비 대변인의 언급은 기존과 다르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위한) 부지조사를 마쳤기 때문에 사드 문제를 한국 측과 비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며 "불행히도 일부 언론들의 잘못된 보도로 우려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폴 담당관에 따르면 현재 양국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사드 배치 문제를 협의하고 있고 △부지 조사를 마쳤기 때문에 협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가 이렇듯 이미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사실상 협의에 들어갔는데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 때문에 혼란이 일고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정례 브리핑 자리에 다시 나타난 커비 대변인은 앞서 했던 문제의 발언을 부인했다.
그는 사드 한국 배치와 관련 "한국과 아무런 공식적 협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동맹인 한국과 군사적 능력의 전반적 분야를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사일 방어가 포함되지만 사드에 관해서는 협의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동사이아 부차관보도 한국 방문 중인 지난 11일 이 문제와 관련 "한국과 미국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어떤 협의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전화통화에서 '한·미간에 비공식적으로도 논의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미 말했듯이 사드 배치와 관련 한·미 간에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재확인했다.
또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드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어떠한 논의도 현 시점에선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제프 폴 국방부 공보담당관이 이미 '부지조사 완료' 사실을 밝힌 비슷한 시점에 헬비 부차관보는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단언한 것이다.
◇ 미국 "공식적 협의 없었다"만 일관되게 강조
한·미 간 사드 배치 논의와 관련 미국 측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대목은 "공식적인 협의(채널)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10일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 발전특위 초청 간담회에서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 "효율적인 전구방어체계이긴 하지만 현재로선 한국 정부와 공식적인 협의 채널이 없다"고 밝혔다.
제프 폴 국방부 공보담당관도 "한국과 아무런 공식적 협의를 하고 있지 않다"면서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2015. 2.10, 한국 방문 중), 척 헤이글 국방장관( 2014.10.24, 제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후 기자회견) 등 미국 관리들 발언에서는 일관되게 '공식적 협의는 없었고, 공식 협의 채널도 없다'는 점이 강조됐다.
한국 정부 역시 '공식적인 협의 요청이 있으면 그때 검토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같은 발언으로 볼 때 제프 폴 국방부 공보담당관이 솔직히 털어놓았듯 '비공식적'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제 남은 것은 공식적으로 미국이 협의를 요청하고 한국 측이 접수하는 모양새를 갖춰 어느 시점에 공개하느냐 하는 것뿐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동북아 안보지형에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최대 안보 현안을 놓고 공개적인 여론 수렴 대신 '공식 요청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함구무언 하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도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