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전격 소환하면서 저축은행 비리 수사의 종착점이 어디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이 금융감독 기관의 감사 무마, 세무 조사 완화, 퇴출 저지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대부분 로비 등을 통한 ‘뒷거래’를 통해 해결해 왔다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면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역대 정부의 집권 말기면 어김없이 터졌던 ‘게이트’급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문어발식 감사·세무조사 무마, 구명 로비 의혹=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의 정·관계 비리 커넥션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 초기부터 금융 브로커 윤여성(56)씨를 검거하는 데 주력해 왔다. 지난 19일 구속된 윤씨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수사의 무게중심이 로비 의혹 부분으로 옮겨갔다.
김양(58·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윤씨는 저축은행 의사 결정 과정 전면에 나서지 않고, 주로 막후에서 움직였다. 부산저축은행이 지난해 부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퇴출 저지를 위해 전방위로 뛸 때 청와대 고위 인사와 친분이 있는 박모 변호사를 찾아가 해결 방안 등을 논의한 것도 윤씨였다. 당시 동행했던 저축은행 직원은 박 변호사에게 “차명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라고 윤씨를 소개했다고 한다.
검찰은 윤씨가 은 전 위원 외에도 여러 명의 정·관계 인사들을 접촉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검찰이 최근 부산저축은행이 인천 효성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위해 세운 특수목적회사(SPC) 중 5곳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윤씨는 관련 사업권을 비싸게 사주는 대가로 다른 시행사로부터 15억원을 받은 것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으며,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다른 감사원 감사위원 A씨가 부산저축은행의 감사 결과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완화시켜주는 데 관여했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대 교수 출신인 박모씨가 부산저축은행 구명 운동에 적극 나섰다는 의혹도 있다. 박씨는 한 교회 장로로, 이 대통령의 당선 이전 교회 소그룹 활동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현 정부 인사들과 교류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씨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 내용이 확인되면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박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부산저축은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개입했다는 단서도 포착했다. 박씨는 부산저축은행이 경기도 용인시에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토지소유권 분쟁이 생겨 2008년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김양 부회장의 부탁을 받고 조사를 담당한 서광주세무서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검찰에서 “세무조사 문제를 해결해 준 박씨에게 경비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서광주세무서로부터 당시 세무조사 관련 자료를 모두 넘겨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각종 인·허가 로비 의혹도 수사=검찰은 박씨가 부산저축은행의 SPC 사업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로비를 벌였는지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박씨가 2003∼2004년 초 부산저축은행 주식을 대거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라선 이후 부산저축은행이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을 자진 폐지했고, 이후 투기적 부동산 시행 사업에 본격 뛰어든 점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박씨는 광주 K고 출신으로 호남 지역에 인맥이 두텁고, 참여정부 때의 유력 인사들과 교류가 있던 인물이다. 부산저축은행이 ‘전국구’ 규모로 발돋움하고, 해동건설의 정부 발주 사업 수주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지난 정부 시절이었다. 박씨를 압박해 전 정권 인사들의 비리 사실을 캐내겠다는 게 검찰 복안으로 보인다. 박씨는 각종 로비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검사 이석환)는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비호 세력 간의 유착 관계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신씨 일정이 담긴 여비서의 다이어리를 확보, 신씨가 접촉한 정·관계 인사들의 면면을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가 2004년 9월 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본격적으로 정·관계 등에 인맥을 넓혀왔다는 점에서 신씨의 ‘입’이 열릴 경우 그 폭발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