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검증의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 주말, 임명 열흘 만의 대변인 돌연 사퇴와 이른바 ‘윤석열 X파일’ 실체 공방이 동시에 벌어진 게 계기가 됐다. 정식 등판도 하기 전에 본격적인 정치 시험대에 오른 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그는 지난 3월 검찰총장 직에서 사퇴한 이후 대선주자인 듯 아닌 듯 모호한 행보를 보여 왔다. 석 달 가량 잠행하다 얼마 전 우당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에 얼굴을 드러내더니 다시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대중도서관을 찾았던 사실이 나흘 만에 대변인을 통해 공개되는 일도 있었다. 제3자가 메시지를 대신 전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전언 정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다른 대선주자들은 언론과 직접 만난다. 옳든 그르든 자신의 정치 비전을 직접 밝히고 있다. 그래야 국민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검찰주의자’로 평가되는 그가 왜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하는지, 어떤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국민은 들은 게 없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 등 정치공학적 판단을 서둘러 내리라는 게 아니다. 검찰총장에서 대선후보로 직행할 수밖에 없는 ‘정치 등판’ 이유를 윤 전 총장이 직접 본인 입으로　밝힐 때가 됐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오래 전부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대선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나는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굴 속의 곰”이라고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러나 총장 퇴임 후 100일이 지났다. 이젠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 “국민이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답을 내놔야 한다.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적 환경은 엄중하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데다　북핵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 경제도 대선의 주요 화두가 될 것이다. 부동산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 젠더 이슈까지 풀어야 할 국가적 현안이 산적해 있다. 윤 전 총장이 이런 문제들에 어떤 식견과 해법을 갖고 있는지가 어쩌면 ‘X파일’ 보다 훨씬 중요한 리더십 검증 대상이 될 것이다. 늦어도 이달 말에는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과 국가 미래 비전에 대한 생각을 밝혀야 한다. 내년 3월 대선은 불과 8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