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엔 21번, 취임사엔 35번...尹의 약속은 '국민의 자유'였다
时间: 2022-05-13 08:35:00 来源:중앙일보作者:현일훈 기자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헌법(69조)에 명시된 대통령 취임 선서 중 일부다. 이 선서는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대통령의 책무로 못 박고 있다. 대통령직 수행의 근간인 대한민국 헌법도 전문에서부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모두 21차례 등장하는 자유는 부인할 수 없는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첫날, 그의 화두는 명실공히 자유였다. 취임사 세 문장 만인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에서 처음 등장한 자유란 말은 16분간 읽어내린 3450자의 취임사에서 모두 35번 등장했다. 헌법학의 대가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적 가치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빈도는 시민·국민(각 15회)이나 세계(13회), 평화(12회), 민주주의(8회) 등 다른 단어를 압도했다. 윤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자유의 재발견”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전쟁이나 기아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가 아닌, 번영과 풍요,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되는 적극적 의미의 자유”라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경제 성장 전략을 자유에서 찾았다. 윤 대통령은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며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와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만기친람해온 대통령실의 기능을 줄이겠다는 숱한 다짐도 민간의 자유, 시장의 자유, 관가의 자유를 통해 한국이 재도약하겠다는 인식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며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이는 취임 선서에 담긴 복리 증진, 그러니까 복지의 밑바탕에도 자유 증진이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는 의미로, 윤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와 맥락이 닿아 있다. 프리드먼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를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해왔다.
내치뿐 아니라 대북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정책의 토대도 자유와 궤를 같이했다. 북한 비핵화라는 원칙 속에 대화의 문을 열어두겠다고 밝힌 윤 대통령은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며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경제·안보를 꿰뚫는 핵심 단어로 자유를 강조했지만, 협치나 통합은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을 운영하려면 170여석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임에도 그랬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국내외 굵직한 당면 문제들을 열거한 뒤 이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 한 탓이라며 ‘반(反) 지성주의’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윤 대통령은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편 가르기가 횡행한 탓에 정치가 자유를 가로막았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 모두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는 말도 했는데, 이는 당장 반대 진영으로부터 “대한민국이 망했는가”(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하는 비판을 샀다.
윤 대통령 참모들에 따르면 그러나 이는 ‘의도된 배제’에 가깝다. 한 핵심 참모는 “협치라는 말을 굳이 안 쓰더라도, 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 작동 원리가 협상이자 협력”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때 중책을 맡았던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단지 윤석열 정부의 총리라는 이유로 인준을 거부하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협치나 통합이란 말보다, 정치와 민주주의의 근본 작동 원리를 되살리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의지”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했다면, 동선에서 나타난 행보에선 대국민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아침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나설 때와 국회에서 취임식을 할 때, 또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첫 출근을 하기 직전에도 계속 시민과 직접 만났다. ‘국민이 함께 만드는 취임식’ 컨셉이었던 취임식에서도 윤 대통령 부부는 국회 정문에서 단상 앞까지 180m가량을 걸어가며 시민들과 주먹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직접 스킨십한 일부 서울 시민 외에 전체 국민을 향한 소통 메시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정치학회장인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민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으로, 이를 위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는 메시지를 포함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기존의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논란도 불식시키고 소통의 의지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