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호 (安炳浩)
时间: 2022-03-25 08:50:00 来源:作者:
안병호 교수님은 1929년 1월 24일 흑룡강(黑龍江) 목단강(牡丹江)에서 태어나셨고, 1946년 혁명 사업에 참여하여 열심히 일하셨다. 1952년 7월부터 1956년 7월까지 연변대학교 조선어학과, 1956년 8월부터 1960년 12월까지 김일성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1961년 북경대학교 동방어문학과에서 교편을 잡게 됐고 1984년 김일성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6년 정년 퇴임을 했다. 2019년 3월 8일 새벽 북경에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안병호 교수님은 동방어학부 조선어 교연실 주임, 조선문화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고 중국조선어학회 부회장,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중국 한국(조선)어 교육연구학회 회장,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객원교수, 중국표준화 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했다.
평생 조선어 교육에 힘써온 교수님은 퇴임 후 2009년까지 조선어 교육의 최일선에서 부지런히 일해 오셨다. 장기간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기초 교육을 담당하셨고, 높은 책임감과 충실한 강의, 그리고 튼튼한 학술 기초로 학생들의 호평을 받았다. 8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국어학과 언어학 연구를 지향하는 석박사 대학원생의 졸업논문 답변에 참여하셨다. 안 교수님은 <표준한국어><한국어 중급 강의>등 여러 교재를 편찬하셨고 중국에서의 조선(한국)어의 교육 발전, 대학원생 육성, 교재 편찬에 크게 기여하셨다.
안 교수님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어학 연구의 저명한 학자로 학문에 엄격하고 성과가 많아 국내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어와 일본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몽골어, 만주어, 러시아어도 섭렵하셨다. 오랫동안 난이도가 높은 알타이어족의 종합 조사와 연구사업, 그리고 조선어 언어학의 연구에 종사하셨는데, 그 연구 범위는 고대 조선어, 방언학, 한반도 남북 어학 비교, 동방 여러 나라 언어 비교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여러 차례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하여 논문을 발표했고 <조선어 발전사><조선한자음체계 연구><계림유사와 고려시대 조선어><중국 조선족 문화사 대계(언어사)> 등 허다한 저서·논문을 출간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중국 조선어학 연구의 영향력을 높여주셨다. 안 교수님은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저술 작업을 하여 80세의 나이에 학술 저서 <한국어발전사>를 출판하셨는데, 그 깊은 학문 기초와 왕성한 창작력이 여실히 드러나 당대 학자들을 탄복하게 하였다.
안 교수님은 공산당의 교육사업과 학과의 발전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셨다. 안 교수님은 2002~2006년 중국한국어교육연구학회 초대 회장을 맡아 국내 각 대학교 조선어학과 간의 교류를 강화하고 우리 나라 한국어 교육에 크게 기여하셨다.
안 교수님은 1992년 ‘북경대 우수교원’ 영예 칭호와 국무원 정부 특별수당을 받았고, 1994년 대한민국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2012년 ‘북경대 우수 공산당원’으로 선정됐다.
안 교수님은 조국을 사랑하고 공산당에 충성하며 교육사업을 사랑하셨다. 평생 한국어 전공 인재 육성과 학과 건설에 전념하며 청년 교사의 성장과 진보에 관심을 기울여 한국어 전공의 발전, 한국어 인재의 육성과 한국학 연구에 몸을 바치셨다. 안 교수님은 소박하고, 정직하며, 자신에게 엄격하셨다. 또한 명리에 담백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었으며 후배를 잘 보살폈다. 안 교수님은 모든 정력을 교육과 학술사업에 바쳤으며, 그 숭고한 정신과 품격으로 후학들을 감동시켜 학생들의 진심 어린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국내외 동업자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안병호 교수님은 우리 조선학 학계의 덕망이 두터운 선배이자 스승이다. 선생님의 인품은 산처럼 높고 물처럼장구하다. 선생님의 얼굴과 웃는 모습, 숭고한 풍모는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근면정진하고 헌신적인 정신은 언제나 후배 학인들을 이끌고 격려할 것이다.